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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종 2017-06-06 22:18:55, Hit : 17
Homepage   http://ijkim.pe.kr
Subject   노을



노을부동산 / 이정록

빚을 내서라도 서해 쪽에 투자해야 한다고 다들 경을 읽어대드만.
어느 날 그놈의 독경이 신통력을 발휘혔는지 내 쇠귀가 번쩍 뜨이더라고.
아따, 내 머릿속으로 갈매기 울음이 그득 쳐들어오더란 말이여.
그래, 암내 맡은 황소처럼 한달음에 달려가서 개펄 수십만 평을 땅땅 등기해버렸는디,
순식간에 몇 배는 띄드만. 망둥이가 제아무리 높이 뛴다 해도 서해 땅값만큼 솟구치겄나?
나무하고 땅은 그저 큰다더니 을마나 신나던지, 부동산, 부동산경 집필자를 대동하고 냅다
서해로 내려갔지.
그런디, 갈 때마다 바닷물이 남실거려 코쭝배기도 볼 수 없는기라. 안 되겠다 싶어
통닭 스무 마리와 맥주 열 짝을 싣고 내려가 물때를 알어봤지. 근디 말이여,
조금사리에도 말뚝 몇 개 박응께 금세 바닷물이 들이닥치는 기라.
에라, 엿이나 먹어라! 하고는,
거기 토박이인 개불하고 낙지들을 꼬드겨서 노을경작을 하게 된 것이여.
요번 봄에 가봤더니 말이여, 이젠 땅이든 노을이든 팔아먹기 글렀더구먼. 글쎄 말이여,
내가 박아놓은 말뚝에다 그물을 쳐놓았더래니께. 하여튼,
서해 지나다가 불뚝불뚝 솟은 말뚝을 보면
그게 다 내가 박아놓은 것잉께 거기 개불이나 낙지를 맘껏 잡아먹으란 말이지.
그러고, 코끼리 허벅지든 하마 등허리든 진흙마사지가 그만이랑께 몇 삽 떠 가고 말이여.
근디 이참에 마누라를 아예 파묻어 버리자 하고는 트럭 끌고 오는 일은 없어야겄지.
노을은 내가 그중 아끼는 것잉께 볼따구니 불콰할 정도만 처바르는 거 잊지 말구.
아참! 바닷물 만나면 말이여, 무조건 중국 자랑 좀 해줘. 바닷물이 그쪽으루다 몽창 몰려가게 말이여.


부석사의 노을 / 박영교

無量壽殿 댓돌에 앉아
푸른 내일 바라보면
壁畵가 걸어나와 귀엣말을 걸어온다
온몸 다
쭈그러드는 몸살 앓는 오랜 미소

바람개비 돌아가는
언덕배기 앉아보면
때묻은 사람 냄새 씻어도 다시 들고,
휘어진
추녀를 보며 걸어온 길 돌아뵌다

지우면 살아나고
살아나서 또 흩어지는
돌계단 하나 하나가 무덤처럼 엎드려 있어
돌옷 핀
석탑 이야기 물소리에 그늘이 진다

恨을 심고 떠난 사람
情을 업고 돌아오리
뜨는 해 노을이 되면 내 삶도 막불 지피고
따끈한
온돌방에 앉아 自敍傳을 쓰고 싶다.


노을에 물들다 / 조은길

오래 미루던 삭은 어금니를 뽑았다
한쪽 볼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다
서녘 하늘이 뜯어 먹히는
짐승처럼 핏빛이다 나는
엄마 무릎에서 젖니를 뽑던 날처럼
아 하고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이 새빨갛게 젖어 있다
오 저건 피다 생을 되돌리고 싶어
온몸으로 투쟁한 태양의 유서다
검은 까마귀 떼 빙글빙글 맴도는
미친 화가의 그림이다 그가 보낸
밤에 도착한 편지다
한때는 저 순간을 6월의
붉은 장미 꽃밭이라 생각했다 처음으로
내게 장미를 꺾어 주던 사람
지금쯤 그 사람도 저 빛깔로 물이 들고 있을까
혼자 저녁밥 먹기 정말 싫어
꽃바구니를 만드느라 손이 할머니가 돼버린
친구가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달려왔다


노을 속에 잠기다 / 배용제

파장동 횡단보도에 서있는 저물녘
어쩌면 나는,
유린당한 착란의 풍경
불이 꺼진 유리창 속에서만 어른거린다.
내 눈동자 속에서 한 무리의 새떼가 솟구친다.
이마에서 흘러나온 붉은 타르 같은 칠로 덕지덕지 번져가는 허공
벌써 뼈를 이룬 것들은 대지에 우뚝 검게 서고
모든 빛은 나의 내부로 들어와 죽는다.

나는 어쩌면,
유리창에 낀 먼지의 얼룩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이면지처럼 창백한 여자의 얼굴을 지나
구멍가게 시멘트벽의 부서지는 모서리를 지나
불붙는 문들과 화려한 구멍들을 지나
돌아보면 도시는 모래의 유적
돌이켜보면 나는
저 아득한 古生代 노을 속을 떠돌다
잠을 잘 때만 부스럭거리며 내 정체를 드러냈었지

나는 모래의 태반에서 기어나온 몸
어쩌면, 정말 어쩌면
몇 번인가 뒤집힌 지층의 풍경, 불붙은 모래먼지의 착란
속에서 한 어여쁜 아이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노을 속에 잠기다 잠깐 뒤돌아보면.
놀이터에서의 한때


노을 / 기형도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午後(오후) 6시의 참혹한 刑量(형량)
단 한 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時間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象徵(상징)을 몰아내고 있다.
都市(도시)는 곧 活字(활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速度(속도) 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冊(책)이 되리라.
勝負(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午後 6時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日常(일상)의 恐怖(공포)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 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고속도로변 노을 / 마종기

왼쪽으로 한동안 크고 넓은 노을이 타고 있었어.
달리는 차에 가득 담기는 진한 핏빛의 무게
그 노을이 목소리를 내며 내 몸을 감았어.
온몸의 그늘이 더워지는 어지럽고 난처한 힘.
늦가을 나목의 긴 손들은 여기저기서 천천히
연기와 냄새만 남기는 낙엽을 어루만지며
멀리 떠나간 이나 잊힌 이름들을 찾고 있었어

그러니까 나는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거야.
그날의 노을이 왼쪽에서 다시 나를 붙잡으면
평생 가보지 못한 길이라고급히 방향을 돌리고
길들어지지 않은 몸만 들고 오라고 말해야겠네.
나를 이끌고 가던 방향은 더 이상 상관이 없다.
녹슨 고속도로는 고개 숙인 채 차들을 외면하고
멀리 보이는 낯선 건물들은 차게 식어간다.

우주는 한 개뿐이라고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더 아끼는
그런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피곤한 뼛속에
다 숨어서 살 뿐, 아무도 찾지 않는 저녁의 집.
삶의 이름이 아픔이란 것을 몰랐던 탓일까.
고속도로의 복잡한 매듭이 느슨히 풀어진다
남은 저녁이 노을의 끝을 잡고 달리고 있다.


노을 격포 / 송반달

물거품 별처럼 이는
노을궁宮 격포 해변에서
웃는 눈물방울 보네.
저 한 송이 석양화夕陽花 앞에서
떠나온 여인은 소리 지르고
고래등 같은 섬 노을 분만하는
인어는 자장자장 하네.
그때, 모래 젖 물고 칭얼대는
거품들 떠밀어 탁아하고
바다의 풍성함에
연연하는 바람에 사로잡혀
파도의 두상들 금관 쓰고 너울춤 추는데
모여드는 해변엔 반짝이는
거품과 거품뿐이네.
날마다 잉태하고 날마다 분만하는
그 마음
몹시 슬퍼서 웃는 눈물 속으로
연한 연미복 입은 금성이
석양화 꽃마차에 노을공주를
태워 떠나네. 그리고
눈물방울 속에서 달이 뜨고 마네.
별들은 자장자장 반짝여라.


너무 무거운 노을 / 김명인

오늘의 배달은 끝났다
자전거를 방죽 위에 세워놓고 저무는
하늘을 보면

그대를 봉함한 반달 한 장
입에 물고 늙은 우체부처럼
늦기러기 한 줄
노을 속으로 날고 있다

피멍든 사연이라 너무 무거워
구름 언저리에라도 잠시 얹어놓으려는가
채 배달되지 못한
망년(忘年)의, 카드 한 장


소 떼 울음소리 뒤의 저녁노을 / 서상만

덩구덩 북소리가 섞여 있다, 가죽회초리에 뚜들겨 맞아
게거품 물고 바다는 미쳐서
갈기갈기 제 옷을 찢어발겨 흔든다
한 무리 눈알 부릅뜬 소 떼 울고 간 저녁바다 물결 위에
시뻘건 노을이 엎질러져 뉘엿댄다
수 만 번 불러도 말 못하는 것이 끝없이 흘러가는
저 피 묻은 서쪽하늘

또 날이 저문다, 푸른 묘등 위로 길이 저문다
수평선 멀리 굼실대는 돛배 하나, 또 다른 저녁을 향해
한 점 먹물로 번진
겁 없는 목숨들의 징징거림도 보인다

가끔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차갑게 식었다가, 바람에
스스로 제 몸을 맑히는 먼 불국의 목어처럼
간기에 젖어 눈 멀어버린
백발의 파랑을 치다가 어느 뭍으로 스며들어
하얀 소금꽃이 되고 싶은,
덩구 덩덩 북소리 들리면
바라만 보아도 찔끔찔끔 눈물 나는
소 떼 울음소리 뒤의 저녁바다


노을 / 최영철

한 열흘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초승달 칼날이
만사 다 빗장 지르고 터벅터벅 돌아가는
내 가슴살을 스윽 벤다
누구든 함부로 기울면 이렇게 된다고
피 닦은 수건을 우리 집 뒷산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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